실패한 나의 자연농
땅을 갈지 않고 비료는 고사하고 퇴비도 안주고 비닐을 덮지 않고 혼자 힘으로 맹렬하게 자라는 풀을 손으로 일일이 메면서 농사짓는다는 거
백 평까지는 아무것도 안하고 매일 아침 밭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듯 반복하면 어떻게 수확량이 가능하다. 그리고 몇 년하면 밤에 뼈 마디마디 관절 전체가 아프다.
그 이상은 혼자 생몸으로 오 마이갓..미친 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농사를 짓는 이들은 관념이 아니라 몸으로 연기와 공성을 깨친다.
나는 자연농만큼 상호 의존성과 연기를 몸으로 가르치는 수행법을 보지 못했다.
순환된 것으로 연결된 자에게 무엇을 내것이라 할 만한 실체가 있나. 공성은 자연스레 따라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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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농을 하는 농부에게 밭 한 뙈기는 먹고 사는 생업의 현장이자, 상호 만물이 촘촘히 연결된 우주다. 달의 차고 기움과 황도대를 지나는 태양에 따라 심는 씨앗과 올라오는 풀과 꽃은 연결되어 있다. 거기 기대어 사는 곤충과 새들도 공생의 관계다. 흙 속의 미생물에서 잡초의 나고 스러짐까지 만물이 정묘하고 풍요로운 에너지 장안에 상호 의존하며 연결되어 있다. 씨앗 한 알 조차도 외따로 떨어진 것이 없다.
꽃 진 자리에 맺힌 씨앗의 꼴에 경탄하고 풍뎅이의 등껍질 색깔과 더듬이에 감탄하고 밀과 밀 사이에 집을 짓고 새끼를 낳는 종달새에 가슴 두근거린다.
그곳은 생명의 신비를 알아가는 학교이자 괴롭거나 외로울 때 기대는 지성소이자 기도처이고, 구할 자리가 어디 딴 곳에 있지 않고 지금 여기 호미끝에 있음을 알게 하는 선방이다.
내게는 자연농으로 짓던 농사가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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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결과는 망했다.
그냥 망 한게 아니라 완전 폭망했다.
천 평 밀 밭은 풀에 완전히 동화되어 자신이 밀인지 풀인지 알 수 없는 존재로 변했다.
고유의 야생성이 강한 밀 맛을 내었으나 수확량은 형편 없었다.
자연농을 하려면 먹고 사는 문제를 가족중 누군가 한 사람이 책임져야한다. 경제적인 문제에서 농사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오십 평 미만의 밭에서 시도해 볼만하다. 분명 일반 농사와 다르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삼라만물의 생명에 접속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자연농을 수십 년 해 온 농부들은 분명 수행자이자 철학자일 것이다.
보고 싶다.내가 어설프게 흉내만 내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포기한 길에서 갤럭시같은 눈으로 밭을 보고 있는 농부들의 얼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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